판도라의 상자와 플랭클린
부자엄마 2007.10.19 조회: 6184 |
# 생각 하나
내가 합격하도록
네 아이들 (저는 아들만 넷이에요)은 한번도 아프지 않았고,
시골에 계신 부모님들은 나를 위해 기도해 주셨고,
남편은 내가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동안 아이들과 놀아 주었고,
강동학원 원장 선생님은 늘 그렇듯이 열심히 수업을 해 주셨고,
함께 공부했던 다른 선생님들은 늘 힘이 되어 주셨다.
내가 대만으로 시험치러 가는 날에도,
비행기가 무리없이 잘 날도록 하늘은 맑았고,
혼자 낯선 곳엘 갔지만, 처음보는 대만 사람들이 길도 가르쳐 주고, 때론 차비도 주고(내가 버스 요금을 몰라 망설이자 자기 돈 5불을 보태주었었다) 외롭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내가 합격 할 수 있도록 온 우주는 그렇게 나를 도와준 것만 같다.
# 생각 둘
밤 늦게 도서관에서 아무 잡념없이 공부만 하고 싶었지만, 마흔 가까운 나이에 그렇게 하기가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가끔은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 나는 지금 판도라의 상자를 열고 있는 것이다 "
함부로 열지 말라던 그 상자를 나는 호기심에서 열었고, 때론 힘들고 견디기 어렵지만, 맨 마지막 '희망'이 나타나 모든 걱정, 근심, 괴로움, 고통을 한번에 날려 버릴 것이라고 그러니 절대 '희망'을 버리지 말자고.
# 생각 셋
대학교때 '성장 심리학'을 수강하면서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인물. 프랭클린.
그는 독일 나찌 시대에 아우슈비츠에서 극적으로 살아 남았던 사람들 중의 한명이다. 그는 자고 일어나면 하나씩, 하나씩 사라져가는 동료들을 보면서 그래서 자신이 아직 살아 있음에 늘 감사하면서 하루 하루를 살아갔다고 한다. 나라면 어땠을까. 그렇게 숨 막히는 하루 하루를 정말 기쁜 마음으로 매일 매일 충실하게 살아갈 수 있었을까 아니면, 불안과 고통의 나날을 보냈을까.
이 시험을 준비하면서 나는 프랭클린처럼 살고 싶었다. 시험 1주일을 앞두고 약간 긴장한 탓에 제대로 발을 뻗고 잘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공부하던 책상에서 주로 쓰러져 자거나 거실에서 웅크리고 잔 적이 많았다. 힘들다면 힘들었던 그 시간을 그래도 나는 아직 내 동료가 가스실에 들어가는 것을 목격할 만큼 힘들지는 않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힘든 시간을 이겨낸 것 같다.
# 생각 넷
장난처럼 원장 선생님께 " 나이팅게일 이래 제가 가장 존경하는 간호사님'이라고 농담처럼 얘기했지만, 제 합격의 70%는 강동학원을 알게 되어 이루어진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니었다면 아직도 전 먼 길을 힘들게 돌아 왔을 겁니다.
그래서 제 합격이 저 혼자의 노력이 결코 아님을 다시 한번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더 감사드립니다. " 원장님, 감사합니다." 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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